저자 장 지글러 | 역자 유영미 | 갈라파고스 | 2016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어린이들이 구조적 부조리에서 제일 먼저 당하게 되는 사회적 사건을 기아라고 할 수 있다.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무덤’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 생산량만으로도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 세계적 식량 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어린이 무덤이 생겨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아 문제에 대한 맬서스의 인구론은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일 뿐이다. 사회 계급 구조와 그에 따른 차별, 그리고 폭력으로 지켜지는 특권에 기초하는 불평등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며 분노와 함께한 또 다른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기아 문제에 대해 대단히 무지했고 안일했다. 가끔 TV에서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의 참혹한 몰골을 볼 때면 일말의 동정심을 가졌다가 이내 무감각하게 채널을 돌릴 뿐이었다. 금기시되는 기아 교육의 영향도 있었지만, 브레히트의 ‘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라는 말처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던 어두운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 같다. 책을 통해 그 절망적인 현실을 낱낱이 직시하게 되면서 무뎠던 인권 감수성이 무척 부끄러워졌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이 시사하는 바가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다르게 느껴졌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질문이 기아 문제의 발생 원인과 그 과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는지 묻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워싱턴 합의에서 찾을 수 있었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의 무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싱턴 합의란 미국과 국제금융자본이 미국식 시장 경제체제를 개발도상국 발전 모델로 삼도록 하자고 한 합의를 말한다. 이 워싱턴 합의가 사회윤리를 벗어난 신자유주의와 폭력적이고 거대한 금융자본 등과 결합하여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었고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게 되는 사태를 빚은 것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이 질문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외침으로 느껴졌다. 왜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며 배고픔을 달랠 수 없느냐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모두가 함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절실하게 호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자가 궁극적으로 소원하는, 공공의 인식 변화에서 찾을 수 있었고, 그 과정은 참여로 이어지게 되었다. 청소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았지만, 기아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아를 포함한 인권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겠다고 다짐했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공공의 인식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핵심 및 줄거리
1) 기아는 인류의 역사와 첫걸음을 같이 한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되어 오늘날 ‘물질적인 결핍’은 사라졌지만, 기아 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2) 식량 농업 기구에서는 기아를 원인과 형태에 따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한다.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한다. ‘구조적 기아’는 더딘 경제발전에 따른 생산력 저조, 인프라의 미정비, 주민 다수의 극도의 빈곤 등으로 장시간에 걸쳐 식량 공급이 지체되는 경우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전염병이나 질병의 창궐을 수반한다.
3)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 사회적 양극 구도의 몰락과 기술혁신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금융자본의 세계화로 이어졌다. 민족을 초월하
여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의 과두체제에는 정치적·경제적·이념적·학문적·군사적 힘이 집중되었고 이들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채택해 극심한 불평등을 정당화했다.
4) 자유주의는 정부의 통제를 최대한 줄이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자유’를 빙자한 자본의 횡포와 독점이 발생하고 빈부격차가 커짐에 따라 서민의 구매력이 감소하여 경기가 침체하는 등 많은 부작용이 빚어졌다. 그런 흐름에서 방임적 자유보다 정부의 적극적 관리와 개입 필요성이 요구되었고 자유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수정되었다. 사회 자유주의, 질서 자유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이 등장했다.
5) 신자유주의는 경제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개의 경제 운영은 시장 기능을 통해 수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정부의 개입보다는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중시한다. 부의 창출에 유리하며 효율성과 일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자유’의 전제가 잘못되어 그 개념과 현실을 왜곡할 수 있고 지나친 경쟁주의로 치달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으며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자본의 욕망이 끝없이 확대되어 불필요한 영역들까지 시장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간의 모든 삶에서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겨 인류문화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
6)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만연한 상황에서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을 효율화하고 개혁을 추진하며 인프라 정비를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조처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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